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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애호가이든 전문가이든 이 곡에서 어떤 심오한 가르침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쳄발로 의 장엄함에 친숙해지기 위한 예술을 기대해야 합니다. 내가 이것을 출판하게 된 것은 이익을 위한 것도 야심을 위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순종하는 마음에서일 뿐입니다. 이 곡이 여러분의 마음에 들 것이라 생 각하고 싶습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나는 다른 주문에 대한 것보다 쉽고 보다 변화에 찬 상냥한 양식으 로 귀하를 즐겁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라건대 비판적이기보다 인간적이고 싶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의 즐거움은 배가 될 것입니다. 손의 위치에 관해서는 D는 오른손을, M은 왼손을 가리킨다 는 것을 알아두기 바랍니다. 행복하시길 바라면서.” - 도메니코 스카를라티의 ‘쳄발로를 위한 연습곡’
생애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의 아들로 나폴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음악가였던 아버지에게 처음 음악을 배웠을 것으로 여겨진다. 1701년 나폴리의 궁정예배당 오르간 주자로 임명되었으며 2년 뒤에는 로마에서 대위법 등 이론을 배웠다.그 뒤로 그는 아버지와 같이 오페라 작가로 등장했으나 1708년 피렌체와 베네치아로 수업하러 갔다. 이때 베네치아에서 독일의 헨델과 만나 오르간과 하프시코드의 경기를 하여 그 뒤부터 그와 친교를 맺었다. 1709년에 로마에 거주하고 있던 폴란드 황태후 마리아 카지미라에게 봉사했고 황태후의 소극장을 위하여 몇 편의 오페라를 작곡했지만 황태후가 로마를 떠난 후로는 포르투갈 대사의 악장을 거쳐 1715년 교황청의 줄리아 예배당의 악장이 됐다. 1719년 런던을 방문했고 다음해에 오페라 <나르키소(나르키소스)>를 상연했으나 1721년에 포르투갈의 궁정악장이 되어 리스본으로 갔다. 그는 거기서 왕녀인 마리아 바르바라의 하프시코드의 교사로도 근무하였다. 한때 이탈리아로 돌아왔으나 1729년 마리아 바르바라가 스페인 왕자와 결혼했을 때 그녀를 따라 마드리드로 갔다. 그리고 결국 마드리드에 정주하여 그 곳에서 일생을 마쳤다. 스카를라티는 오페라·교회음악 등도 작곡했으나 가장 유명한 것은 무엇보다도 약 555곡이나 되는 하프시코드 곡이다. 이것들은 주로 마리아 바르바라를 위하여 작곡된 것으로 연습곡이라고 불렸으나 오늘날에는 소나타라고도 한다. 이들 소나타는 2부분형식으로 된 1악장으로 되어 있으나 화성구조나 복주제(複主題)의 징조도 보인 점 등 후의 고전파 소나타의 원형을 보이고 있는 면이 현저하며, 대체로 이것은 이미 로코코풍으로 되어 있으며 3도나 6도, 양손의 교차 등 후의 피아노 기법이 퍽 활발히 개척돼 있다.
스카를라티와 소나타
바흐와 헨델과 같은 해에 위대한 작곡가인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의 아들로 태어난 도메니코 스카를라 티는 1728년 페르디난도 6세(1746년 왕이 됨)와 결혼을 한 포르투갈의 왕녀 마리아 바르바라를 따라 스 페인으로 이주했고 여기서 생을 마쳤다. 그는 최후의 작품이라고 여겨지는 소프라노와 현악기를 위한 [ 살바 레지나] 외에는 오로지 쳄발로곡 밖에는 작곡하지 않았다. 카스트라토인 파리넬리의 주도로 더욱 호사스럽게 된 궁정 음악활동 가운데에서, 스카를라티의 작업은 1752년부터 57년 사이 여왕을 위한 마지 막 쳄발로 소나타를 작곡할 때까지 꾸준히 지속되었다. 대단히 작은 규모의 음악 작품만을 작곡했지만 그 안에는 실로 엄청난 규모의 내용과 혁신적인 형식, 스페인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담겨 있다. 555여곡에 이르는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 스카를라티의 단악장으로 구성된 555여곡의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들은 스페인의 도시와 궁정, 농촌의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다채로운 감정과 삶의 모습을 담은 곡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작곡가의 자필보 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작곡가 생전에 출판된 것은 그 수가 대단히 적다. 스카를라티의 생각을 전달해 줄 수 있는 자필 기록 또한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나마 1738년 런던에서 출판된 그의 최초의 쳄발로를 위한 연습곡집 판본의 서문을 통해 이들 작품이 어떠한 의도로 작곡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30곡으로 구성된 이 연습곡집이 출판된 이후 19세기에는 클레멘티와 체르니에 의해 300곡 남짓 알려지 게 되었고 1906년이 되어서야 겨우 알레산드로 롱고에 의해 544곡을 담은 최초의 전집(L 번호)이 완성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작곡 시기를 고려하지 않은 번호인 탓에 랄프 커크패트릭(K 번호)이 1953년에 연 대기순으로 다시 정리했고 1970년대 케네스 길버트에 의해 보강되었다. 스카를라티의 소나타들은 건반악기 음악 스타일의 변화과정에 있어서 쇼팽이나 리스트의 연주회용 연습 곡의 선구자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당시 존재하던 바로크 스타일들의 연장선상에서 이들 소나타 는 화려한 효과를 위한 비르투오소적인 테크닉에 있어서 새로운 깊이를 찾아냈다. 예를 들어 스카를라티 만의 독창적인 연주 방법들로는 빈번한 양손 차와 빠른 3도와 6도 진행, 대범한 옥타브 도약, 손가락 번 호를 바꾸어가며 동일 음표를 반복적으로 누르는 것, 반대되는 선율의 변화를 통한 불협화음, 건반 전체 를 빠르게 아르페지오로 연주하는 것 등등을 손꼽을 수 있다. 그와 동시대 작곡가인 바흐나 대위법 스타일을 고수했던 선배들과는 달리 스카를라티는 고도로 장식된 단선율 스타일을 일반적으로 사용했다는 것 또한 그의 음악의 특징이다. 특히 1750년대에 작곡된 많은 그의 소나타들(특히 K387)은 위대한 비르투오소적인 효과를 위한 화려한 도약과 빈번한 양손 교차를 보 여주고 있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스카를라티 음악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굳어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많은 소나타들은 크게 부드러운 숨결과 무곡적인 리듬을 담은 작품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작품마다 리듬도 훌륭하고 멜로디도 다양하여 언제 어떤 악기(8피트 스톱을 장착한 1단 쳄발로를 위해 작곡한만 큼)로 연주하든 아름다움과 우아함, 스페인의 정열, 더 나아가 건반악기를 위한미래지향적 음악어법을 느 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역사적인 가치가 높은 작품들이다. 특히 스카를라티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의 플라멩고 같은 이베리아 반도의 독특한 민요에 열중했는데, 어떤 작품들은 마치 기타로 플라멩고를 연 주하는 듯한 느낌이 강렬하기에 단순히 쳄발로를 위한 음악이 아닌 것 같은 인상도 준다. 스카를라티 이후 이러한 스페인의 정취를 고급스러운 음악어법으로 담아낸 작곡가를 만나려면 알베니스 나 그라나도스, 라벨이 나타날 때까지 실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더군다나 아치아카투라(Accia ccatura, 빠른 앞꾸밈음) 사용은 빈 고전주의 시대의 피아노 명수들을 앞선 선구자적인 테크닉이었으며, 불협화음의 사용은 후일 브람스나 슈만을 예고하는 듯하다. 스카를라티는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스페인 의 모든 것을 담았던, 스페인인보다 더 스페인적인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거장들의 스카를라티 연주 쳄발로 혹은 포르테피아노를 위해 작곡된 스카를라티의 소나타들은 쇼팽이나 브람스, 바르톡과 같은 작 곡가들에게 가치를 인정받으며 대중적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작품들이 오랜 동안 발견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악기의 한계로 인해 오랜동안 연주되지 않았다. 20세기 초반 반다 란도프스카가 현대 하프 시코드를 연주하며 스카를라티의 작품을 연주 무대에 올렸지만 악기의 작은 음량과 옛 악기 그대로 복원 되지 못했던 현대 하프시코드의 특성상 연주 장소가 제한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피아니스트 블라디미 르 호로비츠가 등장하면서 스카를라티 소나타들은 피아노로 표현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얻게 되었 다. 그는 하프시코드의 기법, 특성을 고스란히 피아노로 옮겨와 그 어떤 작품들보다 훨씬 낭만적이고 아 름다운 효과를 낼 수 있게 만들었다. 이후 아르투르 베네데티 미켈란젤리나 에밀 길렐스를 비롯한 피아노 비르투오소들이 즐겨 연주하며 피아노로 연주하는 스카를라티 소나타가 대세를 이루었다
거장들의 스카를라티 연주
쳄발로 혹은 포르테피아노를 위해 작곡된 스카를라티의 소나타들은 쇼팽이나 브람스, 바르톡과 같은 작 곡가들에게 가치를 인정받으며 대중적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작품들이 오랜 동안 발견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악기의 한계로 인해 오랜동안 연주되지 않았다. 20세기 초반 반다 란도프스카가 현대 하프 시코드를 연주하며 스카를라티의 작품을 연주 무대에 올렸지만 악기의 작은 음량과 옛 악기 그대로 복원 되지 못했던 현대 하프시코드의 특성상 연주 장소가 제한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피아니스트 블라디미 르 호로비츠가 등장하면서 스카를라티 소나타들은 피아노로 표현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얻게 되었 다. 그는 하프시코드의 기법, 특성을 고스란히 피아노로 옮겨와 그 어떤 작품들보다 훨씬 낭만적이고 아 름다운 효과를 낼 수 있게 만들었다. 이후 아르투르 베네데티 미켈란젤리나 에밀 길렐스를 비롯한 피아노 비르투오소들이 즐겨 연주하며 피아노로 연주하는 스카를라티 소나타가 대세를 이루었다. 1980년대 이후 악기의 복원이 제대로 이루어지게 되고 고악기의 레코딩 기술이 확립되면서 쳄발로로 연 주한 스카를라티가 속속 등장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스코트 로스가 34장의 CD에 담아낸 555곡 전곡 레코딩은 역사적인 가치를 갖는 중요한 업적으로 남게 되었고, 랄프 커크패트릭과 트레버 피노크, 안드레 아스 슈타이어, 피에르 앙타이, 콜린 틸니 등등 많은 쳄발로 연주자들이 하프시코드로 연주한 매력적인 스카를라티를 선보였다. 많은 시대악기 연주자들의 노력으로 쳄발로로 연주한 스카를라티에서는 당시의 연주 스타일을 고려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게 되었다.
스카를라티 소나타의 특징 스카를라티는 550곡 이상의 건반악기 소나타를 작곡하였다. 오늘날 수많은 그의 소나타가 피아노 독주 곡으로 나오는데 이는 피아니스트에게나 오늘날의 청중에게나 즐거운 일이지만 본래는 하프시코드를 위 해 작곡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화려한 음향, 과감한 전조, 조성의 선택 등이 하프시코드의 서로 다른 음역에서 잘 어울린다는 하프시코드 연주자들의 설명에서도 뒷받침 되고 있다. 대부분의 스카를라티 에디션은 각 소나타를 독립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일부 학계에서는 이들 소나타를 당시의 다른 이탈리아 작곡가들의 관례처럼 짝지어 연주하도록 의도하기도 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하나 가 장조이면 나머지 것은 단조로, 혹은 둘다 동일 으뜸음조로 쌍을 이루기도 한다. 대개 모든 스카를라티 소나타는 두 부분(Binary form)으로 된 단악장(one movement) 소나타로 되어있다. 각 부분은 연주자 의 요구에 따라 반복할 수 있으며 소나타는 일반적으로 단일주제로 되어있다. 그러나 때로는 주제가 2개 혹은 3개가 되는 경우도 있으며 이러한 요소들이 후에 나타나는 소나타-알레그로 형식의 태동이 되었다. 스카를라티 소나타 주제의 특성에는 짧고 간결하면서도 괄목할 만한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주 제는 전개과정에서 어떤 화성적 색채와 결합하여도 결코 왜곡되지 않고, 그만의 독특한 우아함으로 주제 의 선명함을 유지하고 있다. 그가 소나타에서 즐겨 사용하는 기법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양손교차(crossi ng of hands), 옥타브를 넘는 넓은 음역의 도약, 화려한 음향을 내는 연속3도, 아르페지오적 베이스음형, 에코식 반향기법, 주음을 강조하기 위한 장식음 등이 그것이다.
이는 스카를라티가 하프시코드의 결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고안된 것이라 추측되고 있다. 대부분의 스카를라티의 소나타는 그가 오랜 세월 지내왔던 스페인의 영향을 보여주는데, 빠른 템포의 춤 곡성격을 나타낸다든지 반복음의 사용을 즐기며 기타의 현을 훑는 듯한 Guitar strumming, 아르페지오 적 분산화음을 자주 사용하는 것이 그 예이다. 이는 스페인의 기타음악과 플라멩고 노래와 춤, 또는 Zapa teado나 Polo 같은 스페인 민속춤을 연상시키는 효과기법이라 생각된다. 이외에도 짧은 앞꾸밈음(accia ccatura), 혹은 불협화음을 매우 적절히 사용하여 곡의 효과를 더해주기도 하고 주제를 건반악기 모든 음 역에 걸쳐 re-echo시키면서 하나의 fughetta처럼 느껴지듯이 대위적 화려함을 연출시키기도 했다. 그러 나 이외에도 때로는 대조적 성격으로 유연하고 포근한 선율과 화성으로 독특한 우아함을 표현하기도 한 다. 이러한 특성들은 수많은 그외 소나타 전반에 걸쳐 나타나며 특별히 L.104(K.159), L.465(K.96), L.3 9(K.249), L.305(K.251) 등에 뚜렷이 표현됐다. 참고로 스카를라티 소나타의 작품번호에는 Kirkpatrick 번호인 K.번호와 Longo번호인 L.시리즈가 있는데 Longo는 수많은 소나타 작품을 그의 고유한 방식으로 조성에 따라 Cantabile style, Dance style 등의 그룹으로 만들어 분류하기도 했다. K.54, K.118 소나타에서는 작곡자의 trade-mark라 할 수 있는 양손교차기법이 특별히 더 잘 나타나 있어 연주자에게나 청중에게나 즐거움을 준다. K.365에는 'jota' 혹은 'folia' 같은 스페인 춤곡이 캐스터네츠 리 듬에 의해 표현되는 듯 하다. 또한 그는 다양한 악기의 음색을 건반악기에 연출하고자 했는데 K.487은 그 예로서 종소리와 기타를 연상시킨다. K.491은 트럼펫과 드럼이 행진곡을 연주하는 듯 생동감 있는 리 듬을 연출하기도 한다. 계속되는 스케일과 반복음의 사용은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바로크의 시대적 환경에 따라 그의 작품에도 fugato나 토카타적인 특성이 나타나기도 하지만 당시 건반 악기에 유행하던 베이스 파트의 continuo, figured bass뿐 아니라 양손의 고른 테크닉의 분배와 음악적 중요성을 부여한 것도 괄목할 만하다. 이것은 K.503, K.54에 잘 나타난다. 또한 급격한 템포의 변화, 도 약하듯 사용한 연속적인 옥타브의 두들김 같은 연속적인 16분음표의 빠른 부분들이 급작스럽게 폭발적 인 화음으로 종지부를 찍는 것, 급격한 다이내믹의 변화, 독특한 리듬의 모티브 등은 하이든이나 베토벤 의 작품 이전에 바로크시대부터 그들의 작품을 미리 맛보는 듯한 신선함과 건반악기의 실험정신을 느끼 게 해준다.